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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정맥종주

한북정맥종주 제10구간 솔고개~성동재

 

한북정맥종주 제10구간 솔고개~성동재

 

산행일시 : 2013 519일 당일산행

      : 맑음

이동경로 : ~~~

산행코스 : 솔고개~청룡사입구~노고산( 496.7m)~중고개~옥녀봉~매내미고개~북한산전망대~숫돌고개~39번도로(51탄약대대입구)~

              거북바위~동물이동통로~천일약수터~현달산~문봉동재~예빛교회~성동재.

산행시간 및 거리 : 25.6KM 9시간10분 산행 .

참여인원 : 감로수 선정화

경비내역 : ~~~

 

한북정맥 제10구간 솔고개~성동재 구간은 이 구간을 거이 매주일요일마다 산행을 하신다는 산꾼을 만나 별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구간종주를 마쳤는데 산행을 한 그 다음날에 뇌사자 장기공여의 수혜자로 채택되어 갑자기 신장이식 수술을 하게 되어 자세한 산행기를 기록하지 못해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사진보기1 : http://blog.daum.net/kiky/563

사진보기2 : http://blog.daum.net/kiky/564

 

-감로수의 병상일기중에서-

2013 5 21일 화요일 맑음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 새벽3시에 느닷없이 전화벨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진다. 잠결에 알람 소리 이거니 생각하고 조금만 더 잠을 자려고 알람 터치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전화기 속에서 여보세요 하고 여성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차, 싶어 읊은 전화기를 귀에 데고 네 하고 답했더니 여기는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 센트 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지난 2007년 초에 만성신부전증 이란 중병의 판명을 받고 그해 54일부터 이틀에 한 번씩 혈액투석으로 생명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병원에서 신장이식을 권유했지만 식구들 중에는 조직이 맞는 사람도 없었고 애들은 아직 어려서 해당도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까지 해야 할 긴박함은 없었기에 혈액투석으로 유지하기로 결심하고 뇌사자 등록을 하라고 해서 서울 성모병원에 뇌사자 등록을 해놓은 상태였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째 되던 해부터 장기이식 센트에서 후 순위로 준비하라는 전화가 가끔씩 오곤 했기에 이번에도 그러느니 하고 수술준비는 되어있느냐의 물음에 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날이 화요일이라서 투석을 하는 날이기 때문에 투석은 하되 금식을 하고 혈액응고를 방지하는 헤파린을 쓰지 말라는 주의 말을 듣고 날이 밝아지자 말자 병원으로 갔다. 주의시킨 데로 간호사님께 전하고 투석을 시작했는데 투석이 그이 끝날 시간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기에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나 보다 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졌는데 장기이식 센트에서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앞사람이 교차반응 검사에서 거부반응이 나타나서 내가 차례가 되었으니 1시간 20분 내로 병원까지 오라는 것이다. 투석이 끝나려면 20여분이 남았지만 시간이 촉박하기에 그만 중단하고 집사람한테 읊은 집에 가서 입원 준비를 하라고 전화를 했다.

 

선수금으로 일천이백만원을 준비하라고 한다. 카드결재도 가능 하다고 해서 돈을 챙길 생각은 하지 않고 빨리 병원으로 가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9500번 삼화고속버스가 가장 빨리 갈 것 같아서 9500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행이 88올림픽대로는 정체 없이 잘 달려가고 있었다. 달려가는 차 안에서 아직도 뭐가 뭔지 어리둥절한 나신을 보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젖어 본다. 뇌사자는 28세 남자이고 나와 조직이 3개나 맞는다는 것이다. 정말 이런 사례는 친인척 형제자매간에나 가능 하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꼭 이식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와 닫는다. 갑자기 나 자신이 참 냉정하고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세상을 살아오면서 남을 마음 아프게 하는 일 없이 살려고 노력도 많이 했었고 다툼이 있을 땐 내가 조금은 손해를 보는 쪽을 택하며 살아왔지만 이번만은 그렇지가 못했다. 나와 조직이 잘 맞는다는 그 말 한마디에 28세 꽃 같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게 된 고인의 대한 안타까움과 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백옥 같은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하는 부모님들의 가슴이 찢어 질듯 아파했을 그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저 그 신장이 내게로 오기를 기대하는 나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이 만감을 교차는 동안 버스는 강남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또다시 마음이 다급해진 나와 집사람은 뛰다시피 병원을 향했고 장기이식 센트에 시간 맞추어서 도착한 필자를 이식 센트 선생님들이 축하한다는 말로 나를 반겨준다. 앞으로 진행할 사항을 설명하는 장기이식 센트 코디 선생님 무엇에 쫓기는 듯 서두르는 모습이 영영 하다. 대충 설명을 듣고 뭔가 다급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예감하면서 입원실로 이동하였다. 곧바로 각종검사가 실시되었고 저녁 7시쯤 수술실로 옮겨졌다.

 

집사람이 잘하고 나오라는 인사를 건네 받고 이젠 정말 수술을 하게 되나 보다 생각하니 긴장되기 시작한다. 뇌사자 이식이다 보니 신속해야 된단다. 수술절차는 빠르게 진행 되고 있었다. 수술실 안쪽까지 들어가 마취마스크 쓰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후론 기억이 전혀 없고 또다시 눈을 떴을 땐 새벽130분 중환자실 이었다. 살갗을 칼로 베어 내는듯한 아픔의 고통만이 있을 뿐이었고 집사람과 울 딸래미가 중환자실 문밖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난 너무 아파서 식구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음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마치 이러다가 숨이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통증이 심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잠시 후 숨이 조금씩 쉬어 질만할 때 의료진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해주신다. 수술하는 동안 오므라들었든 패를 원상태로 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패를 잘 펴기 위해서는 복식호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숨을 가슴으로 크게 들이쉬었다가 끝까지 내뱉는 운동인데 한번 할 때마다 수술상처부위에 통증이 느껴져서 쉽지가 않는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가나 싶을 땐 목이 타 들어가는 목마름의 고통이 따른다.

 

아직까진 물 한 모금 넘길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또 참아야 한다. 지금 이순간은 거저 시원한 물 한잔 마셨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한다. 분괴사고 현장에서 며칠씩 꼼짝도 하지 못하고 빛도 없고 먹을 수도 없는 건물 잔해 더미에 깔려 얼마를 더 기다려야 악몽에서 벗어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불안과 고통을 참으며 갇혀 있다가 구조된 그 사람들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싶다.

 

그기에 비하면 나는 지금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서 시간만 지나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 않는가? 멀어도 내일 아니면 모래면 물을 먹을 수 있겠지 내가 저 문을 나서면 제일먼저 시원한 물부터 한잔 마셔야지 생각하며 문 쪽을 바라보고 이렇게 혼자 말로 중얼거리고 있다. 평소에는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로 내 머리 위에 있는 저 벽시계는 왜 이리도 느리게 돌아가는지 원망 아닌 원망을 해보면서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숫자도 모르는 사람처럼 한참을 바라보며 오늘이 며칠인지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손까지 꼽아보았다.